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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th    바다의 탐구와 동해 이야기
미투데이
남성현  서울대학교
어린 시절, 방학 때가 되면 바닷가 해변에서 노닐었던 기억들도 있지만 ‘탐구생활’ 책과 더불어 학교에서 반드시 내주곤 하던 방학과제 중의 하나가 바로 200자 원고지 서너 장 분량의 ‘과학독후감 쓰기’ 였다.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해양과학 도서를 찾아 읽다가 이런저런 엉뚱한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때 처음으로 바다를 ‘풍경’으로서가 아닌 탐구 대상의 하나로서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마치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장미’처럼 그때 그 이름을 불러주어 존재의 의미를 일깨운 셈이었다. 그로부터 십 수년이 지나 바다에 대해 정말로 많은 것을 배우고자 거창한 꿈을 안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해양학도가 되어 학문적으로 탐구를 시작한 지도 이제 몇 년이 흘렀다. 그렇지만 바다를 접하면 접할수록 점점 깊게 느끼는 것은, 이제 바다에 대해 제법 많이 알게 되었구나 하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남은 평생 다 바치더라도 바다가 간직한 신비의 극히 일부분 밖에 알지 못하고 눈을 감겠구나 하는 무한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일부분이나마 밝혀내기 위해 수 십년 땀 흘려 바치는 것이 전혀 아깝다거나 후회되지 않는 대상이다. 아마도 다른 분야의 자연과학 종사자들이 자신의 탐구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바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일까? 미역, 다시마를 얻는 곳이고, 도미, 민어를 공급하는 먼 시골쯤으로 막연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뜨거운 태양 아래 모래 위를 뛰놀다가 보게 되는 파도나 해지는 노을 아래 갯벌에서 물러나가는 조류 정도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태평양 한가운데 수십, 수백, 수천 미터 수심의 깊은 바다 속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우리’라는 단어를 전지구인으로 확대한다 하더라도 현재까지 우리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그리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그나마 알려진 과학적 사실조차 기술적인 진보에 따라 새로 개발된 첨단관측기기들(자동관측장비, 인공위성 등)에 크게 힘입어 아주 최근에서야 조금 더 밝혀진 것들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인류에게 우주보다도 더 접근하기 어려웠던 곳이 바로 깊고 깊은 바다 속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수 만 광년 떨어진 어떤 은하계에서 일어난 일보다도 불과 수십-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모르고 있기도 하다. 어찌 보면 그러기에 더더욱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대상인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바다가 단순히 과학자들의 학문적 호기심 때문에만 탐구되는 대상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과 수십-수천 킬로미터’가 아니라 ‘수십-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길래 이것을 탐구하려 하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실상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다이고, 여기서 매일매일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아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이 처절한 몸부림을 해야 하는 인류의 당위적 활동임을 종종 잊고 살고 있다. 좀 더 시야를 좁혀 우리나라 사람만을 그 대상으로 한다면, 탐구의 필요성은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우리는 반도 국가의 국민이다. 서해와 남해는 제쳐두고 애국가 1절 가사 첫 단어로 등장하는 ‘동해’만 하더라도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의 표기 논란부터 어업협정, 독도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한일간의 갈등을 불러올 만큼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와 있는 의미 심장한(?) 바다이다.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도 가장 민감한 지정학적 바다라는 측면 외에도 동해는 21세기 경제와 삶의 질(보건-환경), 국가안보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소중하게 여겨 소유하고 그것에 집착하려는 것과, 그것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아무리 동해가 우리 바다라고 해본들 동해가 처한 환경이 어떠하고 동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혹자는 동해의 진정한 소유자는 동해를 보다 잘 아는 존재라고도 말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30년 전부터 러시아 해역에 집중 투기되어 한 때 물의를 빚었던, 잠실운동장 수십 배 규모의 러시아 핵폐기물들이 동해 심층에서 현재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과연 우리는 잘 알고 있는가?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바다를 잃어버린 민족’이란 글을 통해 조선이 반도국민, 임해국민으로서 바다를 잊어버린 이유로 그 웅대한 기상이 없어지고, 가난해졌으며, 문약에 빠져버렸음을 꼬집으면서 신흥민족으로서 출발하던 그 시기에 바다를 찾고, 바다에서, 바다와 더불어서, 우리 국가민족이 무궁한 장래를 개척하는 것이 태평양에 둘려 사는 우리의 영광스러운 임무임을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바다를 개척하고 바다로 먼저 나아간 민족들이 세계를 지배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도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 동해를 되찾고, 동해에서, 동해와 더불어서, 우리 국가민족이 무궁한 장래를 개척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동해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 그것일 것이다. 동해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현장 기초자료의 수집이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깊은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해양학자들은 종종 관측장비를 바다 속 깊이 투하하거나, 깊은 바다 속에 계류해 두거나, 띄어두는 등의 방식으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한다. 이 자료들을 분석함으로써 바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동해에서도 대대적인 조사 프로그램 CREAMS (Circulation Research of East Asian Marginal Seas)을 통해 지난 1993년부터 한-일-러 3국 해양학자들이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공동 참여하여 동해 전체에 대한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1단계(93∼97년) 연구에서 사상 최초로 표층에서 해저까지 동해 전체적인 정밀관측을 수행하고, 2단계(98년∼2002년)에서는 미국 해양학자들이 새로 함께 참가하여 신기술로 무장된 첨단관측 장비들을 동해에서 대량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제 3단계(2003∼2007년)가 시작되어 그 변동성을 이해하고 지속적인 시계열 자료를 수집하는 시스템(EAST: East Asian Seas Time series)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1단계에서 밝혀진 가장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는, 동해의 변화속도가 대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히 빠르다는 즉, 대양에서 1,000년 걸려 이뤄질 해수 순환이 동해에서는 단지 100년 만에 완료될 정도로 ‘작은 대양’으로서의 독특한 연구가치를 지녔다는 점이다. (그림 1, 2) 이 한 가지 만으로도 2단계에서 미국 해양학자들의 참여를 불러일으키며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어, 2단계에서는 미국 해양학자들의 참여 덕분에 다양한 첨단관측장비들이 동해에서 시험, 사용되어 양질의 기초자료가 수집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동해는 이제 국제적인 연구 경쟁의 무대가 되기에 이르렀으며, 다양한 수치적, 해석적 연구들이 이루어졌고, 비교적 많은 과학적 발견들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동해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지난 10년간 이루어진 이들 연구와 더불어 더욱 개선된 자료 수집이 지속적으로 병행될 필요가 있다. 특히 관측기술의 진보에 따라 자료 수집의 제한점을 조금씩 극복하면서, 3단계에서는 동해에서 지속적인 시계열 자료를 수집하여 동해의 변동성을 파악하고, 나아가 일부 자료는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시스템까지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림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동해에 대해 밝혀낸 여러 과학적 발견들은 동해가 가진 모습의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CREAMS 1, 2단계 성과로 지난 10년간 동해에서 수집된 양질의 자료들과 또 3단계 EAST에서 수집될 자료들은 동해에 산재한 수많은 과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매우 귀하게 쓰일 것이다. 국내외 기존 해양과학자들이 어려운 여건 하에서 일궈낸 지난 10년간의 땀방울이 이제 하나씩 결실을 맺을 때가 된 것이다. 호기심과 도전 정신으로 동해의 숨어 있던 수많은 과학적 진실들이 밝혀지길 바라며, 이는 또한 우리 젊은 해양과학자들에게 주어진 몫이 아닌가 한다. 동해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제부터가 또 다른 시작이다.
그림 1
그림 1. 동해 표층수온 영상. 평균수심이 1700m에 달하는 동해는 수심이 얕은(< 200m) 3개의 해협(대한해협, 쓰가루해협, 쏘야해협)을 통해서만 태평양과 연결되어 있어서 닫혀있는 호수 같은 독특한 특성을 갖춘데다가 그림에서 구별되는 것처럼 북위40도 부근에 형성되는 전선을 경계로 북쪽의 냉수대와 남쪽의 온수대가 뚜렷하게 존재하며, 북쪽해역에서는 자체적으로 새로운 수괴의 생성과 열염순환이 이루어지는 대양의 특성까지 지니고 있어,‘작은 대양’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온수대에서도 수심 500m만 내려가면 섭씨 1도 이하의 찬 해수들이 나타나며, 표층의 반쪽이 섭씨 10도 이상 해수들로 덮여있는 듯한 표층 수온영상에도 불구하고 동해 심층해수의 대부분은 이들 1도 이하의 해수들로 채워져 있다.
그림 2
그림 2. CREAMS 1단계(1993-97년)에서 밝혀진 동해의 수온, 염분, 및 용존산소 수직구조. 그림은 1997년 겨울에 동해 중심부에서 측정한 전형적인 수직구조로서 일본학자 Uda(1934)가 동해고유수(Japan Sea Proper Water)라고 명명한 이후 단일수괴라고 알려진 수괴가 동해중층수(East Sea Intermediate Water), 중앙수(Central Water), 심층수(Deep Water)와 저층수(Bottom Water) 등의 서로 다른 여러 수괴들로 구성됨을 Kim(1996) 등이 밝혀냈다. 이수괴들은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약 2000m 수심 용존산소 최소층과 약 1500m 염분최소층 등으로부터 구별될 수 있었으며, 이것은 수온과 더불어 염분과 용존산소를 보다 정밀한 측정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었다. 1, 2단계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들 수괴의 생성과 소멸은 대양에 비해 매우 빠르게 일어난다.
그림 3
그림 3. CREAMS 3단계(2003-07년)에서 구축 계획중인 동해 시계열 자료(EAST: East Asian Seas Time series) 수집 체계. 최근의 위성자료들은 동해 표층의 수온(SST: Sea Surface Temperature), 해면고도(SSH: Sea Surface Wind), 해상풍(SSW: Sea Surface Wind) 등을 주기적으로 관측한다. 대한해협에서는 해수의 흐름이 양단의 전위차를 유도하는 원리를 역으로 이용하여 부산 송정과 일본 하마다간 사이 해저동축 케이블 양단의 전압차로부터 대한해협을 통과하여 동해로 유입되는 해수유량을 1998년 이후 현재까지 매시간 측정해오고 있으며 자료를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한국연안에서는 연안모니터링 부이(ESROB: East Sea Real-time Ocean Buoy)를 설치하여 1999년 이후 매 10분마다 실시간으로 기상(풍향, 풍속, 기온, 기압, 습도 등) 및 해양(파고, 파주기, 수심별 해류, 수온, 염분, 압력 등) 자료를 수집하여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며, 또한 표층 뜰개(drifter)들과 1999년부터 투하된 라그랑지식 심층(수심 800m) 자동 관측기(APEX: Autonomous Profiling EXplorer)들이 현재까지 수십 개씩 동해 800m 수심층에서 돌아다니며 매 10일마다 수집된 수직 수온, 염분 자료를 전송 받아 인터넷에 제공해오고 있다. 그 밖에도 선박을 이용하여 공간적인 관측자료를 수집하는 광역조사도 지속적으로 병행하게 된다. 이들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동해의 시간적인 변화를 모니터 하는 것이 CREAMS 3단계에서 이루려는 큰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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